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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실의 자연치유 식탁 15] 참깨 – 가을 기운을 맞이하는 전환의 씨앗
  • 기사등록 2025-08-28 19:48:12
  • 기사수정 2025-09-10 16: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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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들녘에서 자라고 있는 참깨. 사진=고운실 칼럼니스트■ 가을을 준비하는 작은 씨앗

장마가 물러가고 하늘빛은 한층 투명해졌다. 과일이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들녘의 손길도 분주해진다. 내가 자란 제주도에서는 벼보다 다른 작물들이 이맘때쯤 일거리를 만든다. 가을이 오기 전, 마당에 가장 먼저 들어서는 것은 바로 참깨다. 작은 줄기 끝마다 매달린 알갱이들은 여름의 뜨거운 기운을 머금고, 가을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처럼 톡톡 터져 나온다.

 

우리 집 넓은 마당에 참깨대가 베어져 들어오던 날이면 집안은 늘 작은 축제 같았다. 마당 가득 깔린 파란 비닐 위로 참깨대가 눕혀지면, 장난꾸러기 동생들은 그곳을 미끄럼틀 삼아 뛰어다녔다. 참깨는 툭툭 터져 반짝이는 작은 별처럼 흩어졌고, 우리는 손바닥으로 모아 주워 먹으며 깔깔 웃었다

 

할머니는 참깨가 아까워도 “애들이니 그냥 놀게 둬라”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렇게 흩어진 작은 알맹이들은 저녁 밥상에 올라 고소함을 더하는 ‘참깨 블루스(Blues)’였다. 농사일의 고됨을 달래 주는 작은 보상이자,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작은 알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참깨는 단순한 곡식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달래 주는 ‘치유의 씨앗’이었다.

 

■ 참깨 이야기

참깨에는 흥미로운 전설과 민속적 이야기가 많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라비안 나이트》 속 “열려라, 참깨(Open Sesame)!”라는 주문이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 주문은 닫힌 바위문을 열고 보물 창고로 들어가는 열쇠였다. 왜 하필 참깨였을까? 이는 참깨 껍질이 익으며 ‘톡’ 하고 벌어져 안의 씨앗이 쏟아지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은 씨앗이지만, 열리면 엄청난 보물이 쏟아지듯 풍요와 비밀의 상징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참깨는 노동과 희생, 귀함의 상징이었다. “참기름은 참깨의 피눈물”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참깨를 심고 거두고 기름을 짜기까지의 과정이 고되고 험난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얻어진 참기름은 집안의 귀한 조미료로 쓰이며 음식의 마지막 향과 깊이를 책임졌다. 이 말 속에는 땀의 가치를 잊지 않고, 먹거리 하나에도 감사함을 담던 조상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또한, 참깨는 예로부터 장수와 젊음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중국의 전통 의서인 《신농본초경》에서는 흰 참깨가 기력을 북돋고, 검은 참깨가 머리카락을 검게 하고 정력을 보한다 하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참깨를 ‘불로초(不老草)’에 버금가는 장수의 음식으로 귀하게 여겼다.

 

■ 씨앗 하나가 열어 주는 건강의 길

현대 영양학은 전통의 지혜를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참깨는 불포화지방산, 특히 리놀

레산이 풍부하여 혈관 건강에 도움을 준다. 또한 식물성 단백질과 칼슘, 철분, 마그네슘이 많아 뼈를 강화하고 피로 회복에 탁월하다. 참깨 속 리그난(lignan) 성분, 대표적으로 세사민(sesamin)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여 노화를 늦추고 면역력을 높인다. 그래서 참깨를 꾸준히 먹는 사람들은 피부가 덜 건조하고, 활력이 오래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고향집 마당의 돌담옆에 말려지는 참깨. 사진=고운실 칼럼니스트

 한의학적으로도 참깨(胡麻)는 간과 신장을 보하고, 혈을 보충하며, 장을 윤택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변비로 고생하는 이에게는 참깨죽이, 기력이 떨어진 노인에게는 참깨와 꿀을 섞은 환약이 보약처럼 쓰였다. 다만 성질이 따뜻해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 과다 섭취하면 열감을 느끼거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참깨는 색깔에 따라 효능도 조금씩 다르게 여겨진다. 흰깨는 피부 미용과 장 건강에, 검은깨는 신장 강화와 머리카락 윤택에, 황금깨는 풍미와 영양 균형에 좋다. 이렇게 작은 씨앗 하나에도 다양성과 균형이 숨어 있는 셈이다.

 

■ 치유의 식탁

① 참깨 크러스트 연어 스테이크

[재료] 

연어 스테이크용 2조각, 흰깨, 검은깨 섞어서 1컵, 소금, 후추, 올리브유 약간, 레몬즙

[조리법] 

•연어에 소금·후추 간을 하고, 표면에 올리브유를 살짝 바른다.

•깨를 평평한 접시에 펴고, 연어의 양면을 꾹꾹 눌러 참깨로 코팅한다.

•달궈진 팬에 살짝 기름을 두르고, 연어를 노릇하게 굽는다(겉은 바삭, 속은 촉촉).

 

②참깨 두부 스테이크 with 깨 소스

[재료] 

단단한 두부 1모, 흰깨 ½컵, 간장 2큰술, 꿀 1큰술, 식초 1큰술, 다진 마늘 약간

참기름 약간

[조리법] 

•두부는 물기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노릇하게 구워둔다.

•깨를 곱게 갈아 간장·꿀·식초·마늘·참기름과 섞어 소스를 만든다.

•구운 두부 위에 참깨 소스를 듬뿍 끼얹는다.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채식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채식이나 웰빙식으로 딱 좋다. 참깨와 두부는 서로 부족한 아미노산을 보완해 완전 단백질 조합이 된다.

 

■  “열려라, 참깨! 삶의 문도 그렇게 열린다”

참깨는 크기로 보면 너무나도 작은 알맹이지만, 그 속에 담긴 에너지와 지혜는 결코 작지 않다. “작은 씨앗 하나가 온 들판을 채운다”는 말처럼, 인생의 변화와 치유도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


철학자 루소는 “자연은 결코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 속이는 것은 언제나 인간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오늘 참깨가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도 같다. 자연이 주는 작은 씨앗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그 속에서 건강과 위로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가을 문턱에서 참깨를 떠올리며, 오늘 나는 마음의 문을 조금 더 열어본다. 언젠가 그 열림이 나와 가족, 이웃에게 새로운 풍요와 기쁨을 가져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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