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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실의 자연치유 식탁 1] 요즘처럼 덥고 후덥지근할 때! – ‘잠 오는 채소’ 상추 이야기
  • 기사등록 2025-07-10 16:08:31
  • 기사수정 2025-07-10 18: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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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덥고 후덥지근할 때! – ‘잠 오는 채소’ 상추 이야기. 생성형 AI 이미지

[한국뷰티건강산업신문 고운실 칼럼니스트]


여름 햇살이 이글거리는 오후, 동네 골목을 지나던 발걸음이 푸르른 초록빛 앞에 멈췄다. 골목길 한 켠 커다란 화분 속에서 상추가 길쭉하게 솟아오르며 바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채 땀을 훔치며 지나던 순간, 문득 오늘 저녁 상추쌈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고기를 싸서 먹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상추 한 장에 담긴 이야기를 되새기니 식탁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상추는 우리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쌈 채소다. 요즘은 사시사철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사실 상추의 제철은 봄과 가을이다. 여름에는 더위로 생장이 부진하고 잎이 질겨지며 쓴맛이 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철 상추의 진가는 오히려 이 시기에 더 빛을 발한다. 상추는 몸의 열을 식혀주고 불면과 갈증을 완화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더운 날씨에 지친 몸과 마음에 시원한 위로를 건넨다.

 

상추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다. 이 연한 초록잎에는 오랜 전통과 민간의 지혜, 우리 정서가 깃들어 있다. 조선시대 한 왕비가 심한 불면증에 시달릴 때, 궁중 약초꾼이 상추즙을 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왕비는 그날 밤 깊은 잠에 빠졌고, 이후 상추는 ‘잠 오는 채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단순한 전설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상추에는 ‘락투카리움(lactucarium)’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중추신경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해 진정과 수면 유도에 효과적이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 역시 상추의 진정 작용을 인정했다고 한다. 상추는 불면을 개선하고, 혈액을 맑게 하며, 위장을 편안하게 해주고 피로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뜨거운 날씨로 무기력해지기 쉬운 여름철, 땀 뻘뻘 흘리며 먹는 보양식보다도 한 장의 시원한 상추쌈이 오히려 더 ‘치유’처럼 느껴질 수 있다.

 

상추는 식재료로서의 가치를 넘어, 민속적 상징을 지닌 채소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상추를 제례 음식에 올리지 않았으며, 설이나 상(喪)과 같은 중요한 날에는 피하기도 했다. 이는 상추가 ‘비움’과 ‘순응’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인데, 겉보기에는 연하고 평범하지만 속에는 우리 민족의 철학이 담겨 있다. 바로 욕심을 내려놓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상추는 한국인의 공동체 문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상추쌈을 싸다’는 말은 단순히 음식을 싸 먹는 행위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의 행위다. 상추쌈 속에는 가족의 대화가 있고, 친구와 이웃의 웃음이 있으며, 정(情)이 담겨 있다. 상추로 고기를 싸는 그 순간은 누군가의 마음을 감싸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이어질 때는 상추를 활용한 간단한 치유 음식이 제격이다. ‘상추겉절이’는 대표적인 여름 반찬으로, 신선한 상추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식초, 설탕, 깨소금을 넣고 즉석에서 무쳐내면 된다. 상큼하고 아삭한 맛이 입맛을 돋우고, 더위에 지친 몸에 활력을 준다. 또한 민간에서는 상추즙을 데워 마시는 습관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오늘날 무카페인 자연차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취침 전 따뜻한 상추즙 한 잔은 자연스러운 수면 유도제로도 안성맞춤이다.

 

상추의 이야기는 지역 음식에서도 이어진다. 전남 광주의 명물 ‘상추튀김’은 바로 그런 사례다. 갓 튀긴 튀김을 상추에 싸서 매콤한 간장 양념과 함께 먹는 이 음식은, 상추의 상쾌함과 튀김의 바삭함이 어우러져 여름철 별미로 사랑받는다. 이는 상추가 단순히 곁들임 채소가 아닌, 중심이 되는 주인공으로도 충분히 역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상추는 단지 쌈을 싸 먹는 채소를 넘어서, 우리의 정서와 식문화, 그리고 치유를 상징하는 식물로 조명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식탁 위에 놓인 초록 한 장의 잎사귀가 단지 맛의 조화를 넘어서 마음을 다독이고, 가족 간의 정을 잇는 매개체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식탁’이 아닐까.


오늘 저녁, 당신의 식탁 위에도 화분 속 상추처럼 푸른 숨결을 담아 한 장의 쌈을 싸보는 건 어떨까. 후덥지근한 여름밤, 상추 한 장이 선사하는 작지만 확실한 힐링을 누려보길 바란다.

ㅣ고운실 칼럼니스트 

- 365일 자연치유 저자

- 성결대학교 자연치유 매니즈먼트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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