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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실의 자연치유 식탁 2] “월담초, 그대 이름은 부추”– 피로를 날리고 기운을 채우는 여름 보약채소, 부추 이야기
  • 기사등록 2025-07-14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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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곳 에서나 잘 자라는 부추. 사진= 필자의 텃밭

<한국뷰티건강산업신문 고운실 칼럼니스트>


■ 여름철 기운을 북돋우는 초록빛 건강채소

무더운 여름이다. 오늘 하루도 난 열심히 일을 했다는 즐거움에 문득 떠 오르는 또 하나의 초록빛의 향기! 그리운 옛집 마당 한켠에 소박하게 자라던 부추다. 거창한 밭은 아니었다. 장독대의 몽돌화단 옆에도 빼꼼히 있었고, 빨래줄 아래 자투리 흙에서도 부추는 억척같이 자라났다. 어쩌면 지금도 바둥대며 살아가는 내모습 같아 혼자서 베시시 웃어본다. 얇고 부드러우며 가늘고 여린 잎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향은 어린 시절 여름 저녁을 구성하는 풍경 중 하나였다.


우리 아랫집 명심이 어머니는 종종 가위를 들고 나와 부추를 쓱쓱 잘랐고, 그날 저녁이면 동네 어른들의 막걸리잔과 부추전 굽는 냄새가 골목을 달구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 매점에는 간단한 간식밖에 없었지만 부추 송송 썰어 넣은 잔치국수를 먹는 날이면 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하얀 국수 가락 위로 새파랗게 떠다니던 부추는, 유난히 까다로운 내 입맛에도 기꺼이 맞춰주던 고마운 채소였다.

  

■ 장군을 살린 초록의 힘 !

“부추만 먹으면 담장을 넘는다.”
그 말처럼 부추는 '월담초(越膽草)'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담장을 넘을 만큼 기운이 솟는 채소라는 의미다. 이런 별명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부추에 대한 오랜 민간 신앙과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려 말, 전쟁을 앞두고 지친 장군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자 마을 어르신이 건넨 부추즙 한 사발. 그걸 마신 장군은 눈에 띄게 기운을 차렸고, 그날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 이후 사람들은 부추를 ‘기양초(起陽草)’, ‘장군초’라 부르며, 활력과 용기의 상징으로 삼았다.


실제로 부추는 고대 중국에서도 ‘오채(五菜)’ 중 하나로 꼽히며 귀하게 여겨졌고, 한국에서도 남성 정력 강화는 물론, 출산 후 여성의 기력 회복에 쓰여온 전통 약초였다.

 

 ■ 따뜻하게 순환하는 치유의 채소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따르면 부추는 간과 신장을 따뜻하게 하여 냉기를 몰아내고 오장을 편안하게 해주는 온신보양(溫腎補陽)의 채소로 분류하는 식재료다. 위장을 보호하고 소화를 돕는 데 탁월하며, 심신이 허해졌을 때 정기를 보충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몸이 냉하고 하체 기운이 약한 이들에게 특히 좋으며, 계절이 바뀌거나 기운이 떨어질 때 즐겨 먹으면 좋다고 한다.


부추에 풍부한 알리신(allicin)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대표 성분이다. 마늘에도 많은 이 성분이 부추에는 좀 더 부드럽고 섬세한 형태로 존재해 위에 부담을 덜 주면서도, 기운을 북돋는 작용은 확실하다. 여름철 무기력증, 속 더부룩함, 손발 냉증 등 다양한 불균형을 부추 한 줌이 가볍게 해결해 줄 수 있다.

 

■ 작지만 강한 초록의 식탁

여름철 부추는 요리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부추전’이다. 얇게 썬 부추를 밀가루 반죽에 살짝 묻혀 기름에 지져내면,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전이 완성된다. 장마철 비 오는 날, 파전보다 부추전을 해 주시며 굵은 손마디에 기름칠 하던 하늘에계신 어머니와 동생들의 웃음소리를 떠오르게 하는 것 같다.


‘부추겉절이’도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별미다. 생부추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 식초,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살짝 무쳐내면 끝. 고기 요리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소화를 돕는 최고의 궁합 음식이다. 그 외에도 부추된장국, 부추달걀국, 부추김치 등 간편하면서도 몸을 달래주는 요리로 활용되곤 한다. 

특히 민간에서는 ‘부추즙’을 따뜻하게 데워 꿀과 함께 마시는 ‘기운차(氣運茶)’로 마시며, 피로 회복과 불면 해소에 사용해 왔다. 시원한 물 한 잔에 부추즙을 넣고 마시면 씁쓸하면서도 청량한 맛이 몸을 정화해주는 듯하다.

  

■ 이름에 담긴 민속 정서 나눔의 문화

지역마다 부추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솔’ 또는 ‘솔채’, ‘솔파’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 부르는데, 이는 한자 ‘구(韭)’에서 유래된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정구지가 ‘공동체의 기운을 나누는 채소’로 향토적 정서가 담겨있고,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추는 '정식(正食)'이 아니라 '기운이 필요할 때 나눠 먹는 보양식'이었다. 큰 명절이나 장례에는 삼가지만, 평범한 날, 마을잔치나 손님맞이, 힘든 농번기엔 부추를 넣은 전을 부쳐 함께 나누었다.

가족이 함께 부추를 자르고, 부치고, 나누며 먹는 과정은 단순한 식사가 아닌 공동체 회복의 의식과도 같았다. 그 안엔 생활 속의 온기와 정, 나눔의 미학이 담겨 있었다.


■ 치유의 식탁 위로 오늘도 자라길...

부추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몇 번을 잘라도 다시 올라오고, 한 번 심으면 계절 내내 먹을 수 있다. 관리도 까다롭지 않아 도시 주택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약초’다. 특히 여름철, 부추 한 단만으로도 한 끼 식탁이 회복의 자리가 된다.


요즘처럼 후덥지근하고 기운이 빠질 때, 부추는 ‘큰 한약보다 더 나은 작은 약초’로 식탁에 올라야 할 시기다.


■ 오늘 저녁, 고기 없이도 좋다.
부추겉절이에 밥 한 숟갈, 혹은 바삭하게 구운 부추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작고 소박한 그 한 줌의 초록 안에는 오래된 민간의 지혜와 가족의 정서, 그리고 내일을 위한 기운이 담겨 있다.

지치기 쉬운 이 여름, ‘월담초’ 부추가 식탁에서 전하는 작지만 강한 치유의 메시지를 느껴보자. 자연은 늘 우리 곁에서 회복의 힌트를 건네고 있다.


고운실 | 365일 자연치유 저자, 성결대학교 자연치유매니즈먼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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