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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실의 자연치유 식탁 3]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불로초, 톳” - 바다가 건네준 검은 생명의 풀 이야기
  • 기사등록 2025-07-17 18: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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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의 조류를 이긴 썰물 때 의 톳

[한국뷰티건강산업신문 고운실 칼럼니스트]


냉장고 속에서 꺼낸 바다의 기억

며칠 전, 냉동실을 정리하다가 작년 겨울 제주에서 동생이 보내온 톳을 발견했다. 꽁꽁 얼어붙은 채 남겨져 있던 갈색 해초. 작은 봉지를 꺼내든 순간, 나는 어느 여름날의 부엌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입맛이 까다롭고 아토피로 고생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톳으로 여러 음식을 해주셨다. 입맛이 없을 때면 톳밥, 날이 더우면 톳 콩나물무침, 겨울이면 톳 장아찌가 늘 반찬으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해초 하나에도 정성을 다했고, 나는 그 정성으로 아토피를 이기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그 작고 오돌토돌한 해초 한 줌이, 얼마나 위로 였는지를....,

지금에야 그리움따라 남아 있다.


바다의 불로초 톳!

제주 해녀들 사이에는 톳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깊은 바다 밑, 신령이 머무는 곳에만 자라는 풀”이라며, 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병든 어머니를 위해 바다에 들어간 한 딸이었다고 한다. 그 딸은 어느 날 신령의 인도를 받아 바닷속 검은 풀을 채취해 돌아왔고, 그것으로 밥을 지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했다는 설화다.


이 전설에는 단순한 민담 이상의 상징이 깃들어 있다. 바다 깊이 들어갔다가 나올 때, 해녀들이 "호이~" 하고 내뱉는 숨비소리에는 생명의 위태로움과 동시에 바다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 있다. 톳을 채취하는 행위는 곧 생명을 지키기 위한 깊은 의식이었으며, 그 속에서 해녀들의 문화와 정신이 오롯이 드러난다. 바다에서 자라나는 이 검은 해초는 단지 한 지역의 전설로 머무르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사람들의 식탁과 약재로 함께해 온 톳은, 그 가치를 조용히 증명해왔다. 일본에서는 ‘히지키(ひじき)’라 불리며 장수를 돕는 대표 건강식으로 사랑받고 있고, 한국에서도 ‘톳’ 외에 지역과 문헌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토래’, ‘흑채(黑菜)’, ‘녹미채(鹿尾菜)’, ‘토의채(土衣菜)’ 등은 그 지역의 언어와 식문화가 반영된 호칭이다.

 

동양의학이 전하는 바다의 치유약초, 톳

바다의 검은 숨결이라 불리는 갈조류 톳은 예로부터 동아시아 한의학에서 귀한 해양 약재로 쓰여 왔다. 《본초강목 本草綱目》에서는 오장의 균형을 돕는 생리적 작용으로 ‘바다의 불로초’라 불릴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아 톳을 다음과 같은 효능으로 활용한다.


•청열해독(淸熱解毒)

체내 열과 독소를 제거해 여름철 열성 질환, 피부 트러블, 염증 완화에 효과적이다.

•연견산결(軟堅散結)

갑상선 결절, 유선염, 자궁근종 등 단단한 종괴를 부드럽게 풀어준다.

•이수소종(利水消腫)

수분 대사를 도와 부종을 줄이고 이뇨를 촉진한다.

•건비화담(健脾化痰)

위장 기능을 돕고, 담(痰)과 더부룩함, 트림 등의 증상을 완화한다. 이처럼 톳은 한방에서 내적 장기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해양 한약재로 여겨지며,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톳에 대해 “담(가래痰)을 없애고, 나쁜 피를 제거하며, 기(氣)를 소통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톳의 영양 효능

현대 영양학에서도 톳은 기능성 식품으로 손꼽힐 만큼 뛰어난 영양을 지닌 해조류다. 특히 철분 함량은 시금치의 약 20배, 혈액 생성과 빈혈 예방에 효과적이며, 칼슘은 우유보다 12배, 멸치보다 4배나 많아 뼈 건강과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 요오드가 풍부해 갑상선 기능 유지와 체온 조절과 성장 발육에 기여하며, 알긴산과 후코이단은 체내의 중금속·미세먼지 배출, 항암 작용,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여기에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건강에도 탁월하고, 100g당 24kcal라는 낮은 칼로리 덕분에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이상적이다. 단, 톳은 찬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장이 약한 사람은 반드시 데쳐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금속 축적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생식은 피해서 하루 100g 이하 섭취가 권장 된다.

  

건강을 품은 바다의 치유밥상

•톳밥
불린 쌀에 데친 톳을 넣고 고소한 참기름, 간장, 마늘을 약간 넣어 지어낸다.
귀리나 흑미와 함께 지으면 더욱 건강한 식사가 된다.
어릴 적, 나는 이 톳밥만큼은 두 공기씩 먹었다.
소화도 잘 되고, 입안에 남는 은은한 바다향이 유독 좋았다.
“밥이 약이다”라는 말을 어머니는 늘 이 톳밥으로 실천하셨다.


• 톳 콩나물무침
콩나물과 톳을 각각 데친 뒤 고춧가루, 다진 마늘, 식초, 들기름을 넣고 무쳐낸다.
식감이 좋아 여름철 입맛 돋우기에 그만이고, 냉국과 함께 먹으면 더위를 잊게 해준다.


• 톳 장아찌
데친 톳을 간장, 식초, 설탕, 마늘과 함께 며칠 절이면 감칠맛 도는 장아찌가 완성된다. 밥 도둑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별미로, 식욕이 없을 때 딱 좋다.

 

검은 해초, 삶의 순환을 상징하다.

한반도 어촌에서는 톳을 봄철 필수 채취 대상이자 “장수를 부르는 해초”, “검은 기운을 품은 보호초”로 여겨왔다. 경상도, 전라도 해안가 마을에서는 톳을 ‘봄밥 해초’라 부르며, 겨울 내 떨어졌던 기운을 보충하는 데 썼다.


검은색은 동양의학에서 신장(腎)과 수기(水氣)를 의미하는 색이기도 하다. 그래서 톳은 단지 영양만이 아니라, 겨울을 지나 봄으로 회복하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마치 땅에서 올라오는 쑥처럼, 바다에서도 생명의 새싹이 자란다는 믿음, 그 믿음이 오늘날에도 톳을 우리 밥상에 올리는 이유다.

 

느리게 자라지만 오래 가는 삶

톳은 깊은 바다 속, 거센 조류를 이기며 자란다. 

시간이 걸려도 꺾이지 않고, 서서히 자신을 키운다.
그래서인지 톳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느리지만 단단하게 살자’는 다짐이 생기기도 한다.


 이 상황에 이 말이 맞을지 모르지만
“바다처럼 살자. 때로는 밀려나도, 다시 돌아오는 힘이 있으니.”


우리는 매일 바쁘고 지친 하루를 살지만, 바다의 시간을 담은 한 그릇의 톳밥은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자연의 처방전이다. 이처럼 톳은 바다에서 온 귀한 치유 식재료로서 우리의 식탁에 건강과 활력을 더해 줄 수 있다. 올여름엔 부드럽게 데친 톳 한 접시로, 몸과 마음 모두를 다스려보는 건 어떨까?


오늘 저녁, 부엌 냉장고 한켠에 필자처럼 톳을 한 웅큼 보관하고 있는지 찾아보자.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면, 그 속엔 단지 해초가 아니라, 기억과 정성, 회복과 감사가 담겨 있을 것이다.


고운실 | 365일 자연치유 저자, 성결대학교 자연치유매니즈먼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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