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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실의 자연치유 식탁 5] 콩-세대를 이어갈 삶의 깊이 - 밭에서 나는 기적의 보약!
  • 기사등록 2025-07-24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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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뷰티건강산업신문 고운실 칼럼니스트]


어머니는 늘 하루를 누구보다 먼저 시작하셨다. 이슬이 마르기 전, 아이들이 눈을 뜨기도 전에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 밥을 하곤 하셨다. 그리고는 막 밭에서 따온 콩잎에 밥을 올리고 멸젓 한 점 얹어 콩잎쌈을 싸주셨다. 푸르스름한 풋내와 쫌쪼름한 멸젓 냄새는 어린 나에겐 불만의 대상이었다. 이건 안 먹는다고 퉤퉤거리며 투정을 부리리고 있을 때 쯤 친구들의 학교 가자!는 소리에 가방을 메고 후다닥 뛰쳐나가곤 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반찬이 맛 없다고 투덜거리는 나를 가만히 두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한 쌈에 담긴 정성과 기다림, 그 계절의 땀 내음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이제는 그 콩잎쌈 하나를 먹기 위해 다시 여름 밭을 찾아야겠지만, 그 밭도, 그 밥상도, 그리고 어머니도 이제 곁에 없다.

 

"밭에서 나는 소고기." 어릴 적부터 귀에 익도록 들어온 말이다. 콩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따라붙던 표현이다.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겠지만, 내게 콩은 그 이상이었다. 그 속엔 단백질뿐 아니라, 삶의 향기와 이야기, 그리고 잊히지 않는 치유의 기억이 담겨 있다.

 

그날도 마당 한켠에서 콩깍지를 까고 계시던 할머니는 중얼거리듯 말했던 것 같다.

“콩은 안 심어도 해마다 나! 씨를 꼭 남기는 식물이거든.”

어린 시절엔 그 말이 그저 신기하게 들렸다. ‘심지 않아도 나는 콩’이 있다는 말은 마치 마법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말 안에 담긴 삶의 순환과 생명의 연속성, 그리고 자라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남기려는 지혜의 철학을.

“자라거든 배우거라.”

할머니의 그 말 한마디 속엔, 콩처럼 묵묵히 세대를 이어온 삶의 깊이가 있었다. 지금도 어느 여름날 아침, 그 콩잎쌈의 풋내를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유행가 가사를 읊조린다.

“콩 밭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

“무슨설움 그리많아 포기마다 눈물심누나”.

오늘 내게 단순한 음식의 기억이 아닌 이 땅의 어머니들이 흘린 땀과 사랑, 그리고 생명을 이어온 작고 단단한 씨앗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약방의 비밀을 간직한 밥상 위의 약초

강원도 두메산골 어느 약초꾼은 산삼보다 콩을 더 귀히 여겼다고 한다. “삼은 귀하지만 밥상엔 자주 못 올라오지. 하지만 콩은 날마다 사람을 살린다.” 그 말처럼 콩은 예로부터 서민의 약초, 곧 밥상 위의 명약이었다. 《삼국사기》와 《향약집성방》에도 콩은 질병 예방과 건강 유지에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검은콩은 오장을 보하고, 청태콩은 위장을 튼튼히 하며, 메주콩은 장 기능 회복에 효과적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병든 사람에게 특별한 약차 대신, 콩물에 인삼과 대추를 달여 마시게 하거나 볶은 콩을 곱게 찧어 죽처럼 끓여 먹였다고 한다. 경북 봉화 지역에는 혼례 전날, 신부가 검은콩을 갈아 넣은 물로 목욕을 하면 액운을 씻고 건강한 아이를 낳는다는 전통이 전해진다. 작고 단단한 콩 한 알에 질병은 물론 운명까지 다스리는 힘이 깃들어 있었던 셈이다.

 

■ 여름철 위장과 기력을 회복시키는 명약

콩은 대표적인 식물성 단백질 식품으로, 아미노산은 물론 비타민 E, 이소플라본, 식이섬유, 필수 지방산이 풍부하다. 그중 이소플라본은 여성 호르몬 균형을 돕고, 항산화 작용을 통해 노화를 방지하며, 유방암과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동의보감》은 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기운을 북돋우며, 독을 풀고 열을 내리고, 오장을 이롭게 한다.” 특히 대두는 비장과 위장을 튼튼하게 하여 소화 기능을 돕고, 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탁월해 여름철 보양 식재료로 제격이다. 다만 콩은 체질에 따라 성질이 차가운 편이므로,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인삼, 대추, 생강처럼 따뜻한 성질의 식재료와 함께 먹으면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필자가 치매예방을 위해 젓가락으로 땅 바닥에 널린 콩을 한알한알 집어 올리는 연습용 콩이다

■ 치유 레시피 

① 콩죽 – 속을 달래는 흰 보약

• 재료 : 삶은 흰콩 1컵, 불린 쌀 1/2컵, 물 3컵, 소금 약간, 대추 한두 알

• 만드는 법

콩은 미리 삶아 껍질을 벗긴다.

쌀과 함께 냄비에 넣고 중불에서 서서히 끓인다.

바닥이 눌지 않도록 잘 저어주며 약 30분 정도 끓이면 완성.

대추를 위에 띄우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콩과 쌀이 어우러진 이 죽은 속이 차고 더부룩할 때, 또는 회복기에 기력을 북돋을 때 좋다. 부드럽고 따뜻한 맛이 위장을 안정시키고 비장을 보하며, 대추는 몸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예로부터 이 죽은 ‘심신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밥상’이라 여겨졌다.

  

 ② 검은콩 인삼조림 – 기력을 채우는 여름 보약

• 재료 : 검은콩 1컵, 물 3컵, 생인삼 1뿌리(또는 인삼분말), 대추 5알, 간장 2큰술, 매실청 약간

• 만드는 법

콩은 불려서 삶고, 인삼은 얇게 저며둔다.

콩과 인삼, 대추를 냄비에 넣고 간장, 매실청, 물을 넣어 중불에서 졸인다.

국물이 반쯤 졸아들면 불을 끄고 식힌다.

검은콩은 혈액순환과 신장 기능에, 인삼은 면역력 증진과 기력 회복에 효과가 있다.
두 재료의 만남은 무더위로 인한 무기력감, 피로, 집중력 저하를 회복하는 데 탁월하다. 입맛이 없을 때 이 조림 한 접시는 몸과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주는 보약 같은 밥반찬이 된다.

 

문화 속 ‘생명 순환의 철학’

콩에는 다양한 이름이 있다. 백태, 청태, 흑태, 서목태, 약콩, 메주콩, 선비콩, 쥐눈이콩...., 이 각각의 이름에는 기후, 풍습, 민간의 지혜가 녹아 있다. 콩은 단순히 밭에서 자라는 작물이 아니다. 가을을 기다리는 인내, 된장으로 숙성되는 시간, 밥상에서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 함께 담긴 존재다. 콩 한 줌에는 계절과 생명, 그리고 삶의 온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지만 큰 치유! 콩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로 작은 콩알 하나는 흙을 만나야 비로소 생명을 품는다. 그 생명은 우리의 몸을 살리고, 마음을 어루만진다. 콩죽 한 그릇은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콩조림 한 젓가락은 기운을 북돋는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콩도 마찬가지다. 작고 단단한 그 속엔 자연의 치유력과 세월의 지혜가 고요히 숨어 있다. 

오늘 저녁, 밥상 위 콩 한 알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려 보자.

“나는 오늘도 자연으로부터 치유받고 있다.”


고운실 | 365일 자연치유 저자, 성결대학교 자연치유매니즈먼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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